할로겐조명처럼 작지만 오래 빛나는 기업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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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면, 전시된 작품들이 잘 보일 수 있 도록 비춰주는 조명들이 있다. 그곳에 쓰이는 조명은 대부분 할로겐 전구이다. 백열전구에 비해 크기가 작고 가벼운 할로겐전구는 미술관 이나 백화점의 스포트라이트 조명으로 사용되거나 무대의 조명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나 안개등에 주로 사용된다. 채희철 씨는 할로겐전구, 그중에서도 자동차의 조명에 사용되는 할로 겐전구를 전문적으로 생산, 판매하고 있는 중소기업 <DH라이팅>의 대표이다.
 

어린 시절 제 꿈은 소설가나 시인이 되는 것이었어요.


희철 씨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책은 몸이 약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던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는 다른 친구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할 동안 집에서 6명의 형과 누나 들이 보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뜻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 만 같은 중국 고전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 미 읽었을 정도로 책에 푹 빠져 지내던 그는 매년 학교대표로 지금의 독서경시대회와 비슷한 ‘고전읽기경시대회’에 참가하곤 했었다. 그렇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사색을 즐기던 그의 꿈은 글 쓰는 사람이 되 는 것이었다.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대학원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원래는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더 나아가 공부를 더해서 인문학 교수 도 되고 싶었고요. 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싶었는데, 국문학을 선택 하기에는 제가 문학가나 교수가 되지 못했을 경우 취업에 대한 걱정이 생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왕이면 영어도 배울 수 있는 영문학이 낫겠다 싶어서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던 거예요. 처음부터 해외 비즈 니스를 하려고 영문학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죠.”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그는 이왕 글을 쓰는 직업이라면, 소설가보다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신문사가 통합되어 지역마다 신문사가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많지 않을 때였던 만큼 기자가 되기란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 역시 몇 차례 기자 시험을 치렀지만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풀이 죽어있던 차에 그는 아는 형님으 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형님께서 중소기업의 해외영업 쪽에 자리가 있는데 네가 영어를 전 공했으니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지금 우리 청 년들이 고민하는 것과 똑같이 저도 그때는 중소기업을 가야 하나 고민 을 했었죠. 그래도 맡게 될 업무가 해외업무라 제 전공을 살릴 수 있을 것 같고, 비록 어떤 일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한번 가서 해보자 는 마음으로 가게 되었어요.”


지하 사무실에서 시작한 사업을 지난 22년 동안 조금씩 키워나갔죠.

 

희철 씨는 <대신전기>라는 할로겐전구를 생산하는 회사의  해외영업팀으로 들어가, 가방에 샘플과 카탈로그를 넣고 직접 전구를 팔러 해외 로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그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조용 하고 차분한 성격인 자신이 영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은 일을 하면서 바뀌어갔다.

“저는 원래 성격상 영업적인 측면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안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외영업을 해보니 해외 비즈니스는 사람들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혹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성실하고, 모든 일을 아주 꼼꼼히 챙기며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 는 그런 사람이 해외영업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저는 점점 영업 일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즈음 그의 회사는 조명 분야의 세계적인 선도업체 중 하나인 <필 립스>와 합작을 하게 되었다. <필립스>라는 회사는 큰 회사이기에 그 는 표면적으로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필립스>라는 글로벌 기업과 합작을 하게 되면서 그의 업무는 직접 시 장을 개척하고 고객을 만나는, 그동안 해왔던 해외영업 업무와 많이 달 라졌다. 그는 자신이 이 일에서 얻을 수 있던 보람이 없어지고 있음을 느꼈고, 결국 그는 직장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지난 8년 동안 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모험을 해 볼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 에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원맨 오피스(1인이 운영하는 회사)’를 열었다.

“그때 제 나이가 33살이었는데 모아둔 돈이 없었어요. 아내와 아이 둘까지 네 식구가 월급으로 생활하기에도 상당히 빠듯했어요. 은행에 서 1000만원을 빌려서 서울 영등포에 있는 어느 빌딩 지하에 10평 남 짓한 사무실을 얻어서, 책상 놓고, 팩스기 한 대 놓고 그렇게 혼자서 시작했죠.” 1994년 4월, 그렇게 사업을 시작한 이래 그는 올해로 22년째 기업을 이끌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제조업에 손을 댄 것은 아니었다. 그간 회 사 생활을 통해 알게 된 많은 고객들에게 할로겐전구 및 다른 자동차 부품들을 수출하는 무역업이 그가 시작한 사업의 첫걸음이었다.
 
“초기에는 제품을 사주는 사람이 없으니 고생도 많이 했죠. 회사 생 활과 홀로 하는 영업은 생각보다 차이가 크더라고요. 집에 돈도 가져다 주지 못하며 고생하다가 1년 정도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 어요. 그래서 그 옆 빌딩에 있는 지상 사무실로 회사를 옮겨서 5년 동 안 무역사업을 했죠. 그리고 99년도 초에 제조업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인천 부평에 임대 공장부터 시작해서 차츰차츰 사업 을 확장해 나갔어요.”
그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회사 수익의 80%에 달하는 수출을 위해, 해외 고객들 하나하나를 개척하고 만들어 나갈 때 라고 했다. 세계의 넓은 시장에서 직접 큰 기업들을 만나 인사하고, 홍 보하고, 계약을 맺고, 일을 해 나간다는 그 자체에서 그는 보람을 느 꼈다.
“제가 27살 때부터 해외 출장을 다녔는데, 그때는 해외에 나가는 것 을 꿈도 못 꿀 시대였어요. 그렇게 출장을 가서 다른 나라의 공항에 내려 시내로 이동할 때면 늘 느끼는 것이 ‘세계는 이렇게나 광활한데 우리는 이 조그만 나라에서 부딪치고 싸우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젊은이들이 좁은 국내시장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세계로 눈을 넓혔으면 좋겠어요.”
 

건실한 중소기업에 가는 것이, 대기업에 가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 일 수 있어요. 


희철 씨는 대기업과 비교하면 급여가 다소 적고 또 회사의 지명도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경험 면에서는 오히려 중소기업이 낫 다고 생각했다. 자기 업무 외에 다른 부서의 업무는 접하기 힘든 대기 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은 다양한 업무를 주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 가 많기 때문이었다.


“해외영업부에 소속되어 있어도, 생산팀에 내려가서 ‘내가 한번 해볼 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나중에 물건이 나가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되 어 있으면, 가서 포장을 하거나 컨테이너 작업도 할 수도 있죠. 품질 문제가 있으면 바로 품질팀을 찾아가 물어볼 수 있고요. 그 과정을 통 해서 제품에 대한 지식은 물론 원자재, 생산공정, 생산설비 등에 대해 서 전반적인 지식이 쌓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신이 영업하고 있는 제품에 대해 기본적인 모든 지식을 갖추게 되고, 고객이 어떤 질문을 해와도 바로 대답을 해주고 대응을 해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이런 것들이 중소기업의 장점이라고 봐요.” 


그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큰 차이는 없다고 했다. 어떤 기업에 서 일하든 간에 꿈을 키워나가는 것은 자기 능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 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젊은이들의 인식 이 좋지 않아 중소기업에서는 원하는 인재를 채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 고 있었다. 그는 그러한 현실이 아쉬웠다. “우리나라에도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중소기업들이 굉장히 많아요. <DH라이팅>만 해도 정부에서 추진하는 글로벌 전문 후보기업으로 선 정되어 있어요. 회사와 함께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고자 하는 꿈을 키워 갈 만한 경쟁력 있는 회사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꿈은 변해 가는 것이니, 자주 바뀐다고 그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마세요.


희철 씨는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이 “무엇이 되겠다”는 고정적인 꿈을 가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다 보 면, 전혀 몰랐던 분야이지만 알고 보니 그 분야에서 자신의 장점을 발 휘할 수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또 그 분야에서 길을 찾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꿈꿨던 그는 자신 역시 그때에는 해외영업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미래에 어떤 일을 하겠다고 고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지 금은 예전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하고 국제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일단 사회에 뛰어들면 거기서 자신의 꿈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어느 분야든, 이 분야가 자신에게 맞는 분야인지, 자신의 특기를 발휘 할 수 있는 분야인지를 생각해야 되겠죠.” 그는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되기 위해서, 시간을 너무 지체할 필요는 없다고 요즘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 다고 했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꿈이라면 한두 번은 도전해 보아도 좋 지만, 그 이상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는 아닐 지라도, 기회가 주어진 곳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그곳에서 또 다른 길 이 생기고 새로운 기회가 생길 테니, 굳이 그 꿈에 얽매여서 시간을 허 비하지 않기를 바랐다. “안 되면 안 되는 것을 인정하고 포기하면 돼요. 포기한다 해서 뭐 잘못된 게 있어요? 다른 거 하면 되지. 그거 실패한다고 해서 인생을 실패한 건 아니에요. 그래서 저도 제 아들한테는 그래요.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다른 것을 선택하라고요. ‘꼭 그 길만이 너의 인생을 좌지우 지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을 많이 열어두고,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두 려워하지 말고, 대기업이라 해서 좋아하지 말고, 거기서 자기가 얼마만 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빠져들어 가라, 그러면 될 것이다.’라고요.” 


희철 씨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DH라이팅>을 세계시장에서 앞서 나가는 강소기업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직원들이 일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중소기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저는 사업가이니까 회사가 사업 쪽으로 규모를 키우고, 글로벌 시장 에서 경쟁력을 가지기를 원하죠.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독일의 제조업 들이 강하다는 이유가 그것이잖아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강소기업들 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요. 우리나라도 많은 글로벌 강소기업들이 탄 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분야에서 선두주자가 되면 그 회사는 오 랫동안 존속되고 그 안에서 우리의 꿈을 펼쳐 갈 수가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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